다이어트

아... 이 다이어트란 말 참 식상하다.
너무 흔해지면 뭔가 더 대단해지는 기분이다.

단어 위에 아우라가 덧붙여진다.
자, 이 무시무시한 어휘를 선택했으니 이제 어찌할 것인지 토로해보자.

목표는 5킬로그램 감량!
어제 밤 목욕탕에서 목격한 충격의 숫자를 떠올려보자.
흠....흠... 흠...
아마도 내생애 최고(高)의 무게가 아니였을까.
그래. 그렇다.
왠지 치욕스럽다.
이 나이에. 더이상 키도 자라지 않는, 아니 오히려 쭈그러들고 있는 상황에서 5킬로그램 증폭이라니.!!
생각해보면 그 무게는 지난 6개월 동안 꾸준히 증가해왔다. 점점 뱃살이 늘어져도, 팔뚝이 출렁거려도.
그저 옷으로 가려져 눈속임한 걸 모르고. 아니, 그저 얼굴 가꾸기에 급급해 몸체를 잊고 있었다.

자, 이제 이렇게 앉으면 사정없이 꾸물럭거리며 구겨있는 뱃살을 기억하자.
조금씩 조금씩 한줄씩 상쇄해가는 거다.
전의 그 팽팽했던 배를 떠올려보자.
누웠을 때 골반 뼈 위로 올라선적 없었던 평평한 배를 상기시키자.

그땐 가진 것 없는 게 그리 소중한 지 몰랐다.
이제 너무나 풍성하게 가진 살들과의 이별을 준비하자.
눈물도 추억도 필요없다.

그것들은 분해자들의 도움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분명히 배우지 않았던가.
살생을 하는 것도 아니니 양심의 가책도 필요없다.

간단하다.
그만하라, 그만하라 그리도 절실하게 명령해도 듣지 않고 한나절 간 계속하던 테트리스를 떠올려보자.
그 때의 독기를 소환해 가감없이 분출하자.
조금 더 조금 더 한번 더 참아내는 것이 언제나 승패를 좌우한다.

토할 듯이 먹어댔던 지난 날아
이젠 안녕.
난 부활한다.
갱생의 시간은 끝났다.
식충이같은 나 자신을 이겨낸다.
난 할 수 있다.

모든 옷의 피트가 살아나는 그 날을 향해.
자,
이제 한 발짝 내딛었다.
다시 내 여체에 취해보자.
흥(興)이 날 때까지.
 

by lalinne | 2008/12/17 11:32 | 수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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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nne | 2008/12/08 18:05 | 수다 | 트랙백 | 덧글(0)

반성문

구구절절 반성문을 쓰기로 하자.

~하자. 란 의지따위도 필요없다. 해라. 명령이다.

반성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단 한 발자국도.

가식적인 삶.

버려라.

네 이름을 걸고 부끄러운 행동, 말은 아예 하지 말아라.

최소한의 정제한 말만 뱉어라.

그래도 된다.

그래야 한다.

그럴 수 있다.

뼈져리게 눈물 쏟으며 반성을 하자.

지금부터.

다음까지.



by lalinne | 2008/11/28 20:17 | 트랙백 | 덧글(0)

그 꿈...

오랜만에 그 꿈을 꾸었어.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이빨 빠지는 꿈.

어제는 더 독해졌는지 아픈데도 살점을 뜯어내기도 했어.

아흑. 소름끼쳐!

요새 나를 힘들게 하고 있나?

괴로운 걸까?

꿈이 너무 힘들었어.

아프고.

정말로.

그 사람이랑 다른 사람이랑 영화를 보러갔는데, 그리고 나왔는데. 목욕탕으로 도망갔는데. 날 죽이려고 했나. 그건 아닌가.

아무튼 기분이 너무 찜찜해 오늘 약속을 취소했어.

나 어떻해야 해?

이미 그물을 던져 고기가 잡혔는데.

건져 올리기 망설이고 있어.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수월해서.

이게 맞는 건가. 잘하는 건가. 의심이 돼.

벌써 그 사람에 대해 자만하고 있는 걸까.

그 사람은 이미 나에게 빠져있다고 느껴서?

한 번 겪어서. 두 번 겪어서.

사람은 다르지만 같은 양상으로 갈까봐.

그게 두려운가봐.

사랑이란 정말 하나의 모습인걸까.

by lalinne | 2008/06/06 14:59 | 수다 | 트랙백 | 덧글(0)

이건 무슨 의미?

신나게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글을 쓰다가 창이 모두 꺼져버렸다. 내 글을 정말 사라진걸까? 어디로? 모니터에서 신기루처럼 스르륵 공기 중으로? 신나게 써 내려가던 나의 꿈이야기는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다시 글의 처음을 되새김질 해 재현해야하나. 누가 검사하는 것은 분명히 아닐텐데. 아마도.? 그래도 이상하다. 신기한건가? 오랜만에 글을 쓰니. 아니 키보드를 치니. 머릿속에서 읊어지는 말들을 쳐내려가니. 찔끔찔끔 똥을 싸내려가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고양이도 아니고.(그렇게 고상해보이지도 않아.) 거름냄새 풍기는 소똥인가.? 뭔가 내뱉고 있다는. 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써내려가다 이 것 역시 다운되버리면 이런 생각 하지 말라는 도서관 자료실 50번 컴퓨터님의 말씀이신가...?!!!!!!!!! 라고 쓸려하다가 (이미 썼지만.) 놀라운 걸 발견했다. 이런게 발전한 문명의 혜택인건가? 아님 예전에 종이로 글을 쓸땐 당연했던 것인데. 새삼 놀랍고 고맙다고 느끼도록 프로그래머들이 날 길들인건가? 대체"임시저장한 글목록"이란 놀라운 건 뭐지? 아하. 지금도 수 초에 한 번씩 저 위에 주황색 글씨가 번쩍이긴 한다. 어어? 언제 나오지? 어서나와. 컴 히얼~ 이리온. 워워. "저.장.되.었.습.니.다." 오마이갓. 결국 아까 창이 픽!하고 쓰러져도 나의 글은 . 나의 생각은 날아가지 않았다. 아니 날아가지 않게 이글루스님께서 붙들고 계신다. 써프라이즈.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놀라워하는 거. 좋은거지? 근데 내가 저 글을 이어서 써내려갈 수 있을까? 쓰면 또 쓰겠지만. 임시저장이라.... 참 놀랍구나. 내 생각들도. 내 뇌도 저런 기능이 있을까? 아니 너무 그 기능만 죽어라 쓰고 있어서 이런 되새김질 인생을 살고 있는건가? 어쩌면 취직에 대해서. 난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 그건 돈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인거야? 자리가. 그 위치가. 상황이.? 그렇지않나? 난 다른 이의 생활에. 말에 행동에. 영향을 받으니까. (내가 아는 다른이들도 그렇다는군.) 나보다 더 진취적이고. 더 활동적이고. 더 멋지고. 쿨하고. 잘생기고. 예쁘고. 에너지넘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게. 그 모두를 결핍하고 있는 가난한 자의 작고도 완전한 소망이지.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난 예외지만. 그렇지 않지만. 그러고 싶어. 그러니 나.는. 끼워줘. 나 좀 동정해줘. 나 좀 아껴줘. 이렇게 추욱 쳐지게 살고 있는 나를 이끌어줘. 난 하드를 쪽쪽 빨며 놀이터 흙무더기 위를 뭉개고 주저앉아 울고불고 떼를 쓰고 있는. 아니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잠시 그리고 있는 사람인데. 오늘은 날씨도 너무 좋고. 어제처럼. 그제처럼. 산도 저렇게 푸르고. 햇살도 저렇게 따사롭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나 하나만. 단지 나 하나에게는 단비를 뿌려주지 않으련.?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한걸까.? 몇 살 때부터? 난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나약한 생각을?  나약하고 여린게 이기는 거야. 란 맹랑한 생각을 한거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동정과 자비를 유발하게 하는 훌륭한 외모를 지니고 있나? 그건 점점 아닌것 같은데. 내가 모니터로 보고 있는 아름다운 이들의 모습을 내 눈 앞에 씌우고 있나? 정말 그러면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보일까? 가끔보는 거울에선 그렇지도 않은것 같은데?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 맞는거야? 시작은 그저 한 지점일 뿐이잖아.? 누군가 올려다놓은 계단에 오르고 싶은 거면 비굴함을 새겨야하고. 사람들을 변하게 하고 싶은거면. 나 편한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다른 이들이 생각하길 원한다면. 조종하고 세뇌시켜야지. 내가 지금껏 온순히 당해온 것처럼. 복잡해지는게 싫다는 건 뭘 알고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그래본 적도 없었잖아. 점점 단순해지기만 했잖아. 왠지 무료인 것들은 내가 이용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당하고 있는지도. 스며들고 있는지도 모르게된다. 그나마 이런 생각들이 남아 있어서 다행인건가. 그래서 아직 내가 사람인건가?
딸기나 따러 갈까? 정말 약장사라면. 난 어디론가 팔려가는 상상을 한다.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건데. 난 결국 다른 이에게 다른 장소에서 키워지길 바라고 있다. 물 주고 햇빛 쪼이며 키워지는. 농부는 모두 착할 것이다. 내가 본 동화책에선 그랬다. 그래서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그 농부는 박을 키울 것이고. 식구가 많을 것이다. 난 막내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땀을 흘리며 약초를 캘지도 모른다. 그래. 난 모른다. 모른다고 쓰는 게 많을 수록 난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대애충. 얼버무리며 살다가 이도저도 안되게 구역질날만큼 모든 것의 틀이 사라지고 경계가 무너지면. 그 때도 역시 생각하겠지.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면 그러지 뭐. 어차피 죽을 거잖아? 나같이 사는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은 모두가 행복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행복한데. 나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어도 우리 집에 4명이 있으니. 난 상상 속에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하게 닿는다. 내가 아는 사람들. 내가 접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은. 힘들어하고 고통받는 것 역시 삶의 일부분이잖아. 사람이 살면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좀 힘든 것도 있어야 즐거움도 크게 느끼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들은 역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유효하게 닿는다.

by lalinne | 2008/04/18 17:53 | 수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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